재일교포 4세로 태어나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최고의 격투기 선수이자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추성훈. 그의 삶은 국적과 정체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우리에게 던집니다. 일본에서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떻게 타자를 대하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재일교포 차별과 이중고의 삶

추성훈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4세로,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일본에서 살아온 가문의 후손입니다. 그의 아버지 추계이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유도를 시작했고, 한국 국가대표가 되는 꿈을 꾸었지만 부상으로 좌절했습니다. 이 꿈은 아들 추성훈에게 이어졌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유도 재능을 보였던 추성훈은 대학 시절 이미 간사이 지역 유도 대회에서 3연패를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였습니다. 하지만 한국 국적이었기에 일본 전국대회와 같은 주요 경기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도적 제약이 아니라 재일교포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이었습니다. 실력으로는 일본 최고 수준이었지만, 국적이라는 장벽 앞에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증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본에선 배울 수 없는 한국 유도를 배워라. 그럼 한국과의 보너스에서 모두 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태극기를 달고 한국인의 기상을 떨쳐라"라며 한국행을 권했습니다. 일본에서의 차별을 극복하고 진정한 조국에서 꿈을 펼치라는 아버지의 조언은 추성훈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여동생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1998년 부산시청 실업팀에 입단하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조국 한국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일본에서 겪었던 차별보다 더 심한 시련이었습니다. 추성훈은 훗날 "일본에서도 한국 사람이라고 불이익을 주더니, 한국에서도 반쪽짜리 사람이라고 불이익을 주더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한 문장은 양국 어디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재일교포의 비극적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유도계 파벌 문제와 편파 판정의 실체
한국 시청 유도팀에 입단한 추성훈은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2000년 코리아 오픈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몽골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는 전 경기 한판승으로 80kg급 1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선수상을 받았습니다. 6개월 만에 팀 분위기를 바꿀 정도로 지독한 연습벌레였던 그는 1년여 만에 한국 유도의 정점에 있는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유도계는 심각한 파벌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용인대학교 출신 선수들에게 노골적인 특혜가 주어지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협회와 심판진까지 용인대 출신이 장악하여 경기의 승패를 좌우했으며, 용인대 후광 없이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돌 정도였습니다. 일본에서 온 신인 추성훈은 용인대 파벌의 입장에서 눈엣가시였고,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파벌의 피해자가 되어 번번이 판정패를 당했습니다.
추성훈은 자신이 점수를 따고도 오심과 편파 판정으로 패배하거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석연찮은 심판의 지도로 패하는 등 반복적인 불이익을 겪었습니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때는 우리 팀이든 타 팀이든 파벌이 있어서 실력이 있어도 안 됐다"라고 폭로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실력 때문이 아니라 파벌 같은 구조적 문제 때문에 진다"며, "아무리 열심히 해도 편파 판정으로 자신보다 약한 선수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 운동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2000년 12월 외국인 심판으로 구성된 코리아오픈 대회에서 추성훈이 용인대 간판 조인철을 한판승으로 꺾고 우승한 사실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공정한 심판 아래에서는 그의 실력이 명백히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2010년 4월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해 전 경기를 한판승으로 끝내며 우승과 최우수선수상을 차지했지만, 이후에도 국내 유도계의 고질적인 파벌과 차별 문제는 여전했고, 결국 태극마크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실력과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 부조리가 한국 스포츠계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태극마크를 향한 꿈과 아픈 결단
수차례 일본 귀화를 권유받았음에도 추성훈은 태극마크를 달겠다는 꿈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어 세계 1등을 하고 싶다"고 밝혔고, 그 꿈을 이루어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식 스파르타 훈련과 끊임없는 파벌 문제에 대한 불만들이 겹쳐, 유도에만 집중하고 싶었던 그는 결국 어렵고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2001년 6월 국제 대회와 전국체전 우승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유도 선수 생활을 끝내고, 2001년 9월 일본으로 귀화하여 아키야마 요시히로가 되었습니다. 귀화 후 몇 개월 만에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된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조국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있었습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도 결승에서 한국 국가대표 안동진과 일본 국가대표 아키야마 요시히로(한국 이름 추성훈)가 맞붙었습니다. 이 경기는 오랜 라이벌 관계를 넘어선 두 선수의 자존심 싸움이었으며, 특히 추성훈에게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한국 유도계에 실력을 증명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경기 내내 치열한 접전 끝에 득점 없이 종료되었고, 심판 판정으로 추성훈이 승리하자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습니다. 추성훈이 훈련했던 구덕체육관은 이제 그에게 적지가 되었고, 관중들은 일장기를 단 그에게 '아키야마 가족'을 외치며 야유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추성훈은 감정이 뒤섞인 포호로 국제대회 7연속 금메달을 확정 지으며 전 세계 앞에 자신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언론은 '조국을 외면했다'며 추성훈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당시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았던 추성훈은 자신의 기사가 신문 1면에 실린 것을 보고 기뻐하다가 기사 내용을 알게 되자 표정이 어두워지며 "9개월 동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어요. 난 조국을 외치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나는 한국 사람이에요. 비난받는 이유 때문에 힘들었어요"라며 슬픈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훗날 방송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대한민국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냐는 질문에 추성훈은 "복수 같은 마음은 없었다"며, 다만 "한국 감독님들로 하여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시상식에서 일장기와 태극기 사이, 그 중간을 보고 있었다며 어느 쪽도 똑바로 보지 못했다고 말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추성훈의 삶은 국적은 배신이 아닌 '선택'이며, 우리 개개인이 더 나은 삶을 위해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2004년 K-1 히어로즈 서울 대회에 한국 팀으로 출전하여 2명의 선수를 KO 시킨 후 "저는 지금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나 가슴 안에 있는 피는 언젠가 한국입니다. 더 열심히 해서 한국으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소감을 밝혀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그는 한국과 일본 중 어디가 더 좋냐는 질문에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가 더 좋은가를 묻는 것과 같다"라고 답하며, 자신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한국을 외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추성훈은 일본의 레전드 모델 야노 시호와 2년의 교제 끝에 결혼에 골인했으며, 딸의 이름을 '추사랑'이라고 지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고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땀과 피, 모래 위를 뒹굴며 받은 돈을 목포의 '공생원'이라는 복지원에 기부해왔으며, 아내와 함께 포항 지진 당시 5천만 원을 기부하는 등 가족 전체가 한국과 관련된 선행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추성훈의 어머니는 그가 한국 국가대표 시절 달았던 태극기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으며, 아키야마 요시히로는 항상 일장기와 태극기를 함께 달고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말합니다.
추성훈이라는 인물은 한국인이라면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일본에서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차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길로 가지 않았고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더 앞서 갔습니다. 운동선수로서도 성공했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대성을 이루었으며, 동시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빛내주고 있습니다. 사람 자체가 올바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굉장히 교과서적으로 도덕적인 인품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는 두 나라 사이에서 힘든 길을 견뎌왔지만 영원한 한국인이며, 어쩌면 그 이상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자일 것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zoAaInkMzns https://www.youtube.com/watch?v=wQHy4ECOpwc